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내가 "소설을 좀 써보려 한다"고 털어놓자그
친구는 나를 비웃음 섞인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무슨 일을 할 사람은 입을 다물고 하는 법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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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소재의 단편소설을 매달 한 편씩 일 년동안 계속하여 쓰는 일.
첫 단편을 쓰기 전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목표로 하는 이미지의 7,80퍼센트에 육박하는 작품은
열두 편 중에 고작해야 두 세 편 정도일 것이라고.
즉 네 편에 한 편 꼴로 그런 대로 쓸 만한 작품이 나오면 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세 편만 쓰면 되지 않느냐고들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는 안된다.
그 서너편을 써내기 위해서 나머지 여덟, 아홉 편이 필요하다는 것을 요즘에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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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자네가 소설을 쓴단 말이지"하며 조롱했다.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써나갔다. 시간이란 모름지기 훔치는 것이란 누군가의 말이 그때만큼 절실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목적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충실감에 크나큰 차이가 있음을 안 것이다.
아니 생각만 하기보다는 실행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깨달은 것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
회사의 엉성함에 대해서도, 세상의 모순에 대해서도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침묵하며 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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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최대의 감동은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컨대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예전에는 결코 할 수 없다며 포기했던 일을 지금은 할 수 있다니, 이만한 감동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과거의 내가 그랬으니 미래의 나도 그럴 것이라는 발상으로는 그런 감동을 절대로 자기화할 수 없다.
나는 미지의 존재이며, 앞으로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은 빛을 발하고 충만해지는 것이며,
또한 영원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펼쳐나가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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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고 그런 비슷비슷한 인생을 살고 있으므로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한 사람도 짜증나는 일이 두세가지 한꺼번에 겹치면 심각하게 전직을 고려한다.
이래가지고선 안되겠다고 절실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새로운 사업을 벌여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 성공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는데다
그 계획을 은밀하고 구체적으로 구상하는 사이에 넌더리도 나고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도약의 발판이 되었어야 할 분노도 차츰 가라앉고,
한 일 년쯤 더 생각해보지 뭐, 하는 핑계와 함께 제자리로 돌아가고 만다.
독립을 희망하는 젊은 샐러리맨들의 공통점은
입으로는 늘 이상을 뇌까리면서 몸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위치를 켜 불을 밝히듯 산뜻한 변신을 꿈꾸면서도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훤히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런 도전조차 해보지 않고 무턱대고 돌진하다 보면 무슨 수가 생기고,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파고들면 길이 열린다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분명한 계획이 서 있지 않는한 위험하다고 한다.
그야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위험하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지 않은가.
앞이 내다보이는 생활을 바란다면, 샐러리맨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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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반대로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꾸는 사람이 있다.
아무튼 이곳에서 빠져나가자, 생각은 나중에 해도 된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표를 내던지는 타입.
이런 사람들도 골칫거리다.
빼도박도 못 하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 가면 분발하는 도리밖에 없다며 자신의 저력을 믿지만
반년이나 일년도 채 못 가 심신이 너덜너덜해지는 경우가 많다.
샐러리맨 시절의 능력에 지나치게 자신을 갖고 있는 타입도 대개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자기가 아니라 명함에 새겨져 있는 회사의 이름을 세상이 상대해주었다는 것을 독립하고서야 깨닫는다면 이미 때는 늦다.
기세등등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얼마 안가서 그만둔 회사에 놀러 갔다가 옛 동료를 붙들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얼마 전까지 앉아 일하던 책상을 새삼 쓰다듬어보기도 하다가
급기야 이전 월급의 반만 받아도 좋으니 다시 근무하고 싶다고 한탄하는 경우도 있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보겠노라며 다니던 직장을 뛰쳐나와 분발하던 사나이가
얼마 안 가 이전이나 다름없는 조그만 회사에 눌러앉아 이전과 전혀 다름없는 일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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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쓴 소설로 문학상을 수상하며 드라마처럼 직장을 퇴사해버린 작가의 자기 얘기.
누군지도 모르고 읽었는데, 와~ !
이 할아버지 아주 독설이 후덜덜하더만ㅋㅋㅋㅋ
정신 똑바로 차리라며 채찍질하는 빡신 삶의 자세와 실천!!!
뭐 책을 반정도 읽고나니까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고
'사나이' '여자' '게이' 에 대한 작가의 세뇌관념이 공감되지 않으므로 -_-
새겨들을 말씀만 새겨듣는걸로.